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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과 운명과 고독 : 백석론
하 희 정(서울대강사)
1. 문제 제기
白石 시를 논하기에 앞서, 한 시인의 시세계를 온당히 기술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에 대해 묻게 된다. 普遍化와 個性化의 두 힘이 맞물리는 지점에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한다. 시인의 정서적 지향성을 보편적·시대적 정신 구조 속으로 끼워넣기, 시적 풍경을 그것을 창출한 사회적 구조로 감싸기, 시적 언술의 특이성를 보편적 언술 구조의 속성으로 환원하기가 보편화의 과정이라면, 개성화는 그 역방향의 과정이다.
어느 한 쪽으로 힘의 균형을 잃을 때, 그것은 어떤 소재에 대한 平均値의 정서를 확인하는 것으로 환원되거나, 시인의 의식 성향을 토대로 한 단선적 텍스트 해석으로 치닫게 되거나, 거칠게 해당 텍스트와 그것을 창출한 사회 구조 사이의 상동성을 확인하는 것으로 귀착될 위험을 안게 된다. 그러한 환원의 과정이 체계적이고 용이한 記述을 가능하게 할 터이지만, 그것은 자의적 해석과 마찬가지로 해당 시 텍스트를 平面化시키기 쉽고 심지어 歪曲시킬 수도 있는 것이기에, 진정한 의미에서 生産的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추출된 徵表들이 해당 시인의 시세계를 이루는 중심점으로서 텍스트 상의 여러 형상에 역동성을 부여하여 그것을 하나의 세계로 生成시키는 根源을 드러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백석 시를 논함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기본적 전제는 다시금 喚起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민속적 풍물 묘사 또는 방언 위주의 시어 구사를 민중적 세계관 혹은 정서의 표현으로, 유년기의 추억과 회상을 소박한 현실 인식 혹은 공동체적 삶에 대한 希求로, 객관적 묘사를 이미지즘 혹은 모더니즘에의 傾倒로 곧바로 연관시켜 설명해버리는 것은 그의 시에 대한 形骸化한 지식의 축적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백석 시세계에 대한 수준 높은 기왕의 논의가 없지 않지만, 아직까지도 단선적 텍스트 해석이 적지 않다. 그의 시가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면서도 뜻밖에 풍문에 내맡겨진 부분이 많다는 점, 그의 문학적 편력에 대한 전체적 조감 위에서 논의가 전개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의 인간적 면모에 대한 성의있는 검토가 전제되어야만, 시 텍스트 해석은 하나의 정신적 사건을 기술하는 차원으로 상승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 {사슴}에 국한되지 않고 전체적인 문학적 성과를 고루 반영할 때라야 온당한 시세계 기술이 가능할 것이다.
이 글은 백석 시에 나타난 여인상을 중심으로 그 풍경을 생성적으로 구성해 내는 內的 中心의 기술을 겨냥하고자 한다. 내적 중심이란 시 텍스트에 내재된 정신적 사건의 중심을 염두에 둔 것이다. 텍스트에 나타난 여러 형상들을 하나의 세계로서 생성적으로 정립하는 힘을 말하는 것인데, 그것은 시적 대상과 시적 주체의 합일 혹은 긴장 속에서 간취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시적 대상이라 함은 자연의 사물 혹은 인간의 사건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주체가 타자를 이해하는 방식을 인도하는 시적 이미지를 염두에 둔 것이다. 예컨대, 시적 대상으로서의 '어머니'는 실체로서의 어머니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어머니의 존재를 가능케하는 일종의 이미지로서의 '어머니'를 말한다. 그것이 단순한 환영으로 치부될 수 없는 이유는, 상상적 동일시를 기반으로 자기 정체성 확립에 기여하는 실제적 효과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관적인 동시에 실제적이다.
또한 그것은 그 나름의 의미화의 틀을 지닌 자율적 성격의 것이어서, 일단 주체는 폐기된다. 그렇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실재의 주체는 폐기되지 않고 그러한 상징화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비록 이미지로서의 '어머니'가 이미지에 불과한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주체는 그것을 실재의 것으로 환각함으로써 스스로 그것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환상의 체험인 동시에 실감의 체험이다. 또 그것은 공적인 의미에서 하나의 관습적 상징으로 굳어지고, 그것이 실제적 인식의 출발점이 되지만, 시적 주체는 그 굳어진 틀에 늘 저항한다. 앞서 언급한 시적 대상과 시적 주체의 합일 혹은 긴장은, 이미지로서의 '어머니'와 시적 주체의 '어머니'의 동일시 그리고 상징화된 '어머니'와 그에 대한 원초적인 저항이라 환언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2. '어머니' 혹은 원초적 충족성
백석 시에 있어 '어머니'는 '집'을 떠나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대체로 유년기적 몽상을 통해 나타난다. 그의 초기시 [여우난곬族]에서 '엄매'는 '아르간'에서 '엄매'들끼리 웃고 이야기하면서 '웃간'에서 '히득거리다 잠이드는' 아이들을 감싸는 존재이고, [古夜]에서 '엄매'는 (타관에 간) 아버지가 안 계신 '山비탈 외따른 집'의 '나'를 아늑히 감싸는 존재이다. 서정적 자아에게 있어 '집' 혹은 '방'과 '어머니'는 그를 보호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원초적 충족성의 공간이다. 물론 원초적 충족성이란 서정적 자아가 안온함의 상태, 존재에 원초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인데, 실재에 있어 누추하거나 협소할 수도 있는 시적 대상(숙소)이 오직 아름다움 혹은 내밀함으로 몽상되는 연유가 거기에 있다.
유년기적 몽상은 그 아름다움과 내밀함을 되살리는 가장 충실한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몽상의 풍경이 아름답고 내밀한 것은 시간적 거리감이 개재된 회상에 그리고 회상되어지는 유년기의 체험 자체에 강렬하고 원초적인 아름다움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몽상이 '집' 등의 '닫혀진 것들'에 대한 것임을 생각할 때, 서정적 자아에게 있어 유년기적 몽상은 안온하게 보호받던 추억들을 되삶으로써 생기를 되찾는 일이라 말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필 때, '아름다움'은 주로 '母性'의 훼손되지 않음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내밀함'은 거칠고 음흉한 밖(세계)과 대립하고 있는, 아니 그것에 의해 생동하게 되는 안('집' 혹은 '방')의 존재로부터 오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母性'과 '집' 안의 다른 '엄매'들의 대비 그리고 '집' 밖의 다른 '여성'들과의 대비를 통해 뚜렷히 드러난다. 그의 시에는 '어머니' 외에 여러 고모의 모습이 확인되는데,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한결같이 신산한 삶을 살다간 이들이다. [여우난곬族]의 공간적 배경을 이루는 곳은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가 계시는 '큰집'인데, 명절날 모인 고모들의 모습이 '어머니'와 사뭇 다르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큰고모는 일찍 남편을 잃은 과부인데 말끝이 서럽고 눈물을 짤 때가 많은 모습("말끝이 설게 눈물을짤떄가 많은")으로 그려지고 있고, 둘쨰 고모인 '新里고무'는 곰보이고 말도 더듬는 모습("얼굴에별자국솜솜난 말수와같이눈도껌벅이는")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셋쨰 고모는 40이 넘은 홀아버지의 후처가 된 "매감탕같은 입술과 젖꼭지가더깜안"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이에 대비되는 '어머니'의 존재는 훼손되지 않은 여성성을 지닌 존재로 그려지고 있거니와, "엄매와 나는 앙궁웋에 떡돌웋에 곱새담웋에 함지에 버치며 대냥푼을놓고 치성이나들이듯이 정한마음으로 내빌눈약눈을받는다"([古夜]중에서)는 그러한 사정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훼손되지 않은 '모성'의 아름다움은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집' 밖의 여러 여인상과 대비될 때 더욱 뚜렷해진다. 그러한 예로 우선 목을 매어 죽은 수절 과부([힌 밤]), "열다섯에 늙은말군한테 시집"을 간 '旌門집가난이'([旌門村]) 등을 들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선명한 풍경이 그의 단편에서 뚜렷히 드러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그 母와 아들](1930.1.26∼2.4 {조선일보})에서의 어머니는 돈냥이나 있는 동네 유부남과 통정하여 개천다리 밑에 숨어 살면서 딸을 낳아야만 했던 젊은 과부로 제시되고 있다. 더군다나 늦바람의 원인이 경제적 궁핍이 아닌 남편이 죽은 지 3년밖에 안되는 과부의 "성욕의 충동"때문이라고 서술하고 있음은 그 훼손의 극단적인 모습 보여주고 있음에 분명하다.
위의 경우 '모성'에 대한 널리 유포된 관념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 것이기에 텍스트 해석이 비교적 용이하지만, 후자 즉 '내밀함'의 경우는 매우 섬세한 텍스트 해석이 요구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일단 '안'과 '밖'을 경계로하여 어떤 대립적 이미지가 놓여져 있음은 분명한 듯하다. 예컨대, [古夜]에 있어 닫힌 공간인 '집' 밖에는 "소를잡아먹는노나리꾼들이 도적놈들같이 쿵쿵걸이며" 다니고 있는 '무서운 밤'의 시간이 놓여져 있으며, 서정적 자아를 감싸는 '방(이불) 밖'에는 "머리맡의문살에대인유리창으로 조마구군병의 새깜안대가리 새깜안눈알이들여다" 보고 있는 '무서운 전설'이 놓여져 있다. 공간을 '마을'로 확대해도 그러한 사정은 마찬가지다. 예컨대, [여우난곬]에 있어 '삼굿'하는 마을의 '나'는 "햇츩방석을깔고" 호박떡을 맜있게 먹고 있는데 반하여, 건너 마을은 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문'의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다. 안온한 '안'의 공간은 '밖'의 '음흉'한 존재에 의해 그 내밀함의 빛을 발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섬세한 텍스트 해석이 요망되는 것은 '안'과 '밖'의 연관성이 그리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백석의 시가 '식민지 피지배 민중의 현실'과 '민중적 감수성'을 특질로 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내세우고 있는 '합일 지향의 정서'란 기실 '안'과 '밖'의 경계를 무화시킬 때라야 도출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초기 시세계를 대표하는 {사슴}에 있어 일정 정도 설득력을 지닐 수 있지만, 그 이후의 시들에서 두드러게 부각되고 있는 고독한 자아의 정서를 포괄하기 쉽지 않다는 문제를 지니고 있다. 이에 비해 '동화적 신화'의 세계와 '민속적 신화'의 세계를 구분하여 설명하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전자는 "유년기적 자아가 중심이 되어 펼쳐가는 화해로운 의인화의 세계"를, 후자는 "집단적 축제와 습속 등에 스며있는" 신성성의 세계를 말한다. 이러한 설명의 틀이 의미있는 것은 백석 시에 고향의 풍요로움과 몰락한 현실의 빈약함이 동시적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는 준다는 점이다. 나아가 앞서 언급한 바의 {사슴} 이후의 시편들에 대한 설득력있는 논의의 토대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이다. 이러한 섬세한 설명의 틀을 구축하게 된 것은 물론 시작품 뿐만 아니라 초기의 단편들을 성실하게 읽은 결과에 크게 말미암은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안과 밖'의 연관이 내포하는 진정한 의미는 양자의 실체 그 자체라기보다는 연관되는 양상 그 자체에 주목할 때 간취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다음의 두 견해를 비교하는 것은 그 연관의 구체적인 양상을 살피는데 중요한 시사를 주는 것으로 보인다. 백석씨의 회상시는 갖은 사투리와 옛이야기, 연중 행사의 묵은 기억 등을 그것도 질서도 없이 그저 곳간에 볏섬 쌓듯이 그저 구겨넣은 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시집 {사슴}의 세계는 그 시인의 기억 속에 쭈그리고 있는 동화와 전설의 나라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실로 속임없는 향토의 얼굴이 표정한다. (중략) 그 외관의 철저한 향토취미에도 불구하고 주착없는 일련의 향토주의와는 명료하게 구분되는 '모더니티'를 품고 있는 것이다. 우선 오장환이 '얼룩소새끼의 영각' 편을 '소년기의 추억과 회상'으로, '돌구덜의 물' 편을 '풍경의 묘사와 죄그만 환상'으로, '노루'와 '국수당 넘어' 편을 '추억과 회상과 얕은 감각과 환상'을 노래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것들의 세계가 질서도 없이 그저 곳간의 볏섬처럼 쌓여 있을 뿐이라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 셈이다. 매우 거친 텍스트 해석인데, 앞서 말한 바 '안'과 '밖'의 연관을 이끄는 힘을 간과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와 같은 오장환의 견해를 '주착없는 향토주의'로의 규정이라 볼 수 있다면, 김기림은 그와 대립된 관점을 보여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가 주목하는 것은 향토취미에 내재된 '모더니티'이다. 한편 앞서의 이분법은 김기림의 견해에 매우 가까운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 하면, 비록 충분한 설명이 주어져 있지 않더라도, '동화'와 '전설'이 각각 '동화적 신화'와 '민속적 신화'에 대응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주목을 요하는 부분은 그 '안'(동화)의 '밖'(전설)의 연관 방식인데, 신범순의 "동화적 세계는 이러한 신화적 세계를 배워가며 그 안에서 커진다"라는 지적은 매우 중요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
그렇다면 그 '배움'과 '커감'을 이끄는 힘은 무엇인가. 김기림의 지적은 그것에 대한 은밀한 단서를 제시하고 있다고 보여지는데, '기억 속의 쭈그림'이라는 어사가 그렇다. "나는이불속에자즐어붙어 숨도쉬지못한다"([古夜] 중에서-강조는 필자)에서 확연히 인지되는 그러한 면모는 백석의 시적 편력의 중요한 일면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기실 백석의 초기 시들이 보여 주는, 곳간에 볏섬 쌓듯이 그저 구겨넣은 데에 지나지 않는다는 혹평을 받았던, 기억 속의 이미지들이 유의미한 이미지 즉 상징으로 전화하는 계기는 '기억 속의 쭈그림'의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를 크게 기억(想起 作用)에 의한 것과 상상(喚起 作用)에 의한 것으로 나눌 때, 백석의 초기 시가 보여주는 이미지들은 기억에 의한 것이 할 수 있다. 나아가 想起되어진 이미지들은 끝임없이 원형을 지향하는 가운데 상징으로 변용된다. 주어진 이미지들이 그저 쌓여 있거나 그저 놓여져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인다. 서정적 자아의 '쭈그림'은 그러한 힘을 부여하는 계기임에 분명한 것인데, 말하자면 전설 곧 '집 밖'의 陰畵와 동화 곧 '집 안'의 陽畵가 서로를 넘너들면서 생기를 얻게 된다. 물론 그러한 움직임의 토대는 '모성'이라는 원형을 향한 것이다.
요컨대, 백석의 초기시에서 확인되는 '어머니'는 고향이라는 애호적 공간의 중심점을 이루고 있으면서, 그 공간의 아름다움과 내밀함을 일구는 주된 계기가 되고 있다. 원형으로서 모성은 그 공간을 중심으로 제시되는 이미지들을 유의미한 이미지로 변용케 하는 원동력이되고 있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백석의 초기시를 지배하는 정신적 흐름은 이른바 요나컴플렉스에 그 근원을 두고 있고, 동화의 세계와 전설의 세계에 대한 기억으로서의 이미지들은 그 시원으로서의 '모성'이라는 원형을 바탕으로 하여, 자아를 원초적 충족성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아는 갇힌 공간 속에 놓여 있지만, 그 공간은 원초적 충족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기에, 고독하거나 소외되지 않고 늘 아늑하고 행복하다.
3. '연인' 혹은 존재의 고독
원초적인 충족성 혹은 안온함의 공간으로부터 인간적 적의와 싸늘함의 공간으로 자아가 이탈하는 것을 달리 존재가 세계에 내던져진다고 할 수 있다면, 백석의 {사슴} 이후의 시편들은 그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시기 시들의 주된 모티프인 여행 혹은 유랑은 그 구체적 표정이다.
유랑은 두 가지의 의미를 함축하는 것인데, 하나는 존재의 세계로의 내던져짐 곧 '어머니' 밖으로 혹은 '집' 밖으로 내쫓기는 상황의 체험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안식처를 찾는 탐색의 체험이라는 점이다. 시적 몽상의 차원에서 본다면, 그것은 이미지들의 내면적 가치를 그 자체로서 부여해 주었던 기억으로부터 이탈된다는 것과 이미지들에 가치를 부여할 새로운 형이상학을 마련해야하는 강박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어머니'의 대리 충족은 물론 새로운 연인의 발견에서 비롯된다. 백석에게 있어 제도적인 아내는 그러한 여성성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오산학교를 나오고, 아오야마(靑山)학원 영어과 출신이며, 특히 영어·독일어·노어 등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으며, 잡지 {여성} 편집자인 '모던보이'에게 몇 번에 걸친 부모의 강요에 의한 결혼이 늘 실패를 거듭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의 많은 시편이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애증을 담고 있는 것임을 고려할 때, 그의 아내에 대한 표현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
오히려 시인에게 중요한 의미를 띠는 여인상으로는 당시 조선 권번의 기생 김자야와 통영의 처녀 박경련-흔히 '난(蘭)'이란 이름으로 시에 등장하는-을 들 수 있다. 두 여인의 공통점은 어떤 의미에서 운명적인 삶을 살아갔다는 점이다.
子夜는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집안이 파산하게 되자 고전 궁중 아악과 가무에 조예가 깊었던 琴下 河圭一(1867∼1960)이 이끌던 정악전습소와 조선 권번에서 들어가 지냈던 기생이다. 기생이라고는 하지만 경성 관철동의 꽤나 개화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하였고, 동경의 문화학원을 수학한 모던한 취향의 엘리트 여성이며, 몇 편의 수필을 발표한 이른바 문학기생이기도 했다. 시인은 함흥 영생고보의 교원으로 있던 시절에 그녀와 만나며, 이후 그녀와 함흥과 서울을 오가면서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우여곡절이 많은 사랑을 나눈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자신의 글에서 [힌 바람벽이 있어]를 포함하여 많은 시편이 자신을 염두에 둔 것인 양 기술하고 있지만, 그대로 믿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를 제외하면, 분명히 그녀를 의식하고 씌여진 작품은 별로 없다. 함흥에 있으면서 서울을 오갈 때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이 작품을 그녀를 염두에 둔 것으로 파악하게 되는 결정적 단서는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라는 구절과 당시 단성사에서 두 사람이 [전쟁과 평화]를 감상했다는 사실에서 이끌어 낼 수 있다.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눈이나린다(중략)눈이 푹푹 내리고/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나타샤가 아니올리없다/언제벌써 내속에 고조곤히 이야기한다/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같은건 더러워 버리는것이다//눈은푹푹 나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어데서 힌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 중에서-
'나타샤'라는 여성상은 "세상은같은건더러워버리는것이다"는 언짢음의 정서에 되비쳐짐으로서 아름다움의 표상으로 전화되고 있다. 하지만 호의적 정념과 언짢음의 정념은 서로를 충분히 끌어당겨 융화되지 못하고, 일종의 간극을 노출하고 있다. 이 경우 여성성은 각 이미지들의 원형을 이루는 胚芽로서 작용하지 못하게 되며, 또 이미지에 일종의 형이상을 부여할 수도 없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시인에게 있어 子夜라는 여인상이 그만큼 절실한 희구의 대상은 아니었다는 것을 드러내 주는 것은 아닌지….
子夜의 에세이가 자신의 생애와 두 사람 사이의 만남이 모두 운명적이었다는 표정을 짓고 있지만, 기실 그 운명론은 시적 대상의 것일 뿐, 시적 자아의 것은 아니었다고 할 것이다. 이에 비할 때, '蘭'이라는 여성상은 사뭇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백석의 시편에는 그녀를 염두에 둔 시편들이 많다. 통영을 소재로 하는 기행시들은 대부분 그녀에 대한 상상에 받쳐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蘭이라는이는 明井골에 산다는데/明井골은 山을 넘어 冬柏나무푸르른 甘露가튼 물이솟는 明井샘이잇는 마을인데/샘터엔 오구작작 물을깃는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조아하는 그이가 잇슬것만같고/내가조아하는 그이는 푸른가지붉게 冬柏꼿 피는철엔 타관시집을 갈것만같은데 -[統營] 중에서-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간것을/그렇게도 살틀하던 동무가 나를 벌인일을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중에서-
나의 정다운것들 가지 명태 노루 뫼추리 질동이 노랑나뷔 바구지꽃 모밀국수 남치마 자개집섹이 그리고 천희라는 이름이 한없이 그리워지는 밤이구나 -[夜雨小懷] 중에서-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또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끊여놓고 저녁을 먹는다/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힌 바람벽이 있어] 중에서-
이상은 모두 '蘭'이라는 여인을 염두에 둔 것들로 생각되는데, [편지]는 그녀에 대한 비교적 소상한 내용을 담고 있어 저간의 사정을 짐작케 한다.
남쪽 바다가 어떤 날은 항구의 처녀하나를 나는 조하하였습니다. (중략)그가 열살이 못되어 젊디젊은 그 아버지는 가슴을알어 죽고 그는 아름다운 젊은 홀어머니와 둘이 동지섯달에도 눈이 오지안는 따뜻한 이 날근 항구의 크나큰 기와집그늘진 플가티 살어 왔습니다. 어느새 류월이 저물게실비오는 무더운밤에 처음으로 그를 알은나는 여러 아름다운것에 그를 견주어보앗습니다.-당신께서 조하하시는 산새에도 해오라비에도 또 진달래에도 그리고 산호에도…. 그러나 나는 어리석어서 아름다움이 달믄것을 골라낼일수업섯습니다. 총명한 내친구하나가 그를비겨서 수선이라고 하엿습니다. 그제는 나도기뻐서 그를 비겨 수선이라고하엿습니다. 그러한 나의수선이 시들어갑니다. 그는 수물을 넘지못하고 또가슴의병을 어덧습니다.
남쪽 항구(통영)의 처녀는 물론 '蘭'을 말하는 것이고, '총명한 내친구'는 신석정을, '류월'은 그녀와 처음 만난 35년 여름을 말하는 것이다. 이 외에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녀가 이른 시기에 부친을 잃었다는 것, 그녀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여러 사물들에 그녀를 견주어보는 일을 해 보았다는 것 등이다. '蘭'이라는 여인상은 이중적인 의미에서 운명적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그녀의 실재의 삶이 어떠했는가와는 별개로 시인에게 있어서 운명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상상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시적 자아의 운명적 성격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蘭'이 이른 시기에 젊은 아버지를 여의었다는 점이나, 스물도 못 넘긴 나이에 '가슴의 병'을 얻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그 구체적인 표정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앞서의 자야라는 여인과 그녀를 비교했을 때, 오히려 운명적 생애를 영위한 쪽은 전자가 더 강할 것인데, 그것은 실재의 삶의 문제일뿐, 시인의 내면에서는 그 반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 연유는 일단 나를 버린 '살틀하던 친구'가(위의 [내가 생각하는 것은]에서), 실상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아니라, '그의 지아비'(위의 [힌바람벽이 있어]에서)라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을 법하다. 사실 자신을 배반한 것은 '난'이 아니고, 시인의 친구였던 것이며, '난'이 아름다움의 이미지로 끝까지 간직될 수 있었던 것은 이로 말미암은 것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절친한 친구의 배신과 사랑하는 여인과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서 야기된 좌절감이 종내 시인을 운명론적 현실 인식으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물론 운명론적 현실 인식의 연원은 여러 각도에서 찾아질 수 있다. 예컨대, 샤마니즘적 세계에 바탕을 둔 체념과 수락의 세계관으로서의 숙명론으로, 낙백한 영혼이 펼쳐보이는 페시미즘으로, 현실적 전망이 막혀 있는 상태에서 진보에 대한 신념을 대신할 수 있은 다른 선택으로서
'비관주의'의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거기에 염세주의의 시편들을 보여준 토마스 하디의 시적 영향을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 지점에서 운명론의 형이상학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운명론이란 나와 나의 세계 속에 내재된 삶의 고뇌를 하나의 필연으로써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시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비애 속에서 살아가는 여인, 그녀들과의 좌절된 사랑, 삶의 고뇌를 껴안고 외롭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라는 존재 이 모두를 이끌고 가는 근원적인 힘의 수락은 분명 운명론의 표현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능동적은 운명론의 수락은 주어진 세계의 모든 순간들을 있는 그대로 수락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것을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긍정하는 것이다. 기실 앞서 인용된 바와 같이, 애증이 섞일 법한 친구의 아내가 된 연인에 대한 추억이 아름다움으로 긍정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나는 이 세상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것으로 호젖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듯이 나를 울력하는듯이/눈질을하며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하눌이 이세상을 내일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것들은 모두/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으로 살도록 만드신것이다. -[힌바람벽이 잇어] 중에서-
그무렵 나는 인생의 제일과를 질겁고 행복한것으로배웠섯다/나는 孤獨과 나라니 걸어간다/하늘 높히 短杖 홰홰 내두르며/郊外 풀밧길의 이슬을 찬다/(중략)그 때 나는 인생의 제이과를 슬픔과 孤寂과 애수를 배웟나니/나는 孤獨과 나라니 걸어간다/旗ㅅ폭인양 옷자락 펄펄 날리며/郊外 풀밧길의 이슬을 찬다 -[고독] 중에서]-
아아 말마라 내 발뒤축에는 오나가나 묻어 다니는 달걀구신 마을은 온데 간데 구신이 돼서 나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돼서] 중에서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이렇게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중에서 -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모든 귀하고 사랑스러운 것은 모두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혹은 '사랑과 슬픔으로 살도록' 만들었다는 표현과 '행복'과 '고독'은 나란히 걸어가는 것이다는 표현, '나'를 포함한 사방천지가 모두 귀신으로 휩싸인 것이어서 '나'는 오도가도 못한다는 표현 그리고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고' 그러는 동안에 슬픔과 한탄이 '앙금'이 되어 가라앉는다는 표현은 모두 운명론적 인식을 담고 있다. 여기서 운명은 세계와 거기에 내던져진 '나'을 움직이는('굴려가는' 혹은 '이끌어가는'이 더 적절할 터이지만) 일종의 '큰 힘'으로 나타나고 있다. 각박한 삶을 살아가는 여인들 그리고 도타운 우의를 배반한 친구, 가난하고 외롭게 유랑하는 '나', 그리고 몰락한 공동체의 모습이 아름다운 풍경으로 긍정될 수 있는 것은 운명론이라는 형이상의 획득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초기시에서 보여준 동화의 세계 혹은 원형으로서의 모성에의 집착과는 내밀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시적 정향성이다. 이러한 변모는 현실 인식이 차이에 말미암은 것이기도 하겠고, 시인의 인간적 성숙에 말미암은 것이기도 하겠지만….
운명론이라는 체념적 형이상학을 자아를 정립하는 내적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가? 또 시적인 의미에서 그것으로 주어진 이미지들을 하나의 유의미한 이미지로 생기시키는 힘에 대한 해명을 온전히 대신할 수 있는가? 사실 운명론은 허무주의의 일종으로, 이중적인 의미를 띠고 있다. 종교·도덕 등 이제까지는 온당하였지만 이미 그 초월적 근거를 상실한 가치 체계를 받아들여 그 나름의 안위를 꾀하는 수동적인 측면과 허무한 현실과 적극적으로 대결하여 극복하려는 정신적 기반을 이룰 수도 있는 능동적 측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다. 허무를 운명으로 수용하는 결단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라는 양면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니체가 애써 '적극적 허무주의'와 '수동적 허무주의'를 구분하고자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고, 실존주의에서 '무'와 '죽음'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결단을 통해 허무를 극복하고자 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체념이나 달관의 형태를 띠는 운명론은 이런 의미에서 허무의 수동적인 수락이라 말할 수 있을 터인데, 백석의 시에 나타나는 운명론은 그것들과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애써 새로운 영원성 탐구로 나아가거나 영웅주의에의 유혹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운명론의 특질은 슬픔과 한탄의 운명론적인 현실 인식과 나란히 '고독에의 의지'가 강조되고 있음에서 찾을 수 있는데, "나는 고독과 나라니 걸어간다"(위의 [고독] 중에서)는 진술은 그것의 구체적 표정이라 할 것이다. 사실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그 드물고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마지막부분)는 그러한 의지의 뚜렷한 표현으로, 이는 그의 운명론의 능동적 성격을 드러내 줌에 부족함이 없다 할 것이다.
물론 이 때의 고독이란 어떤 사회적 요인에 의해 야기된 특정한 부류의 인간들의 정서라기보다는 인간 존재의 보편적 조건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 존재는 근원적으로 고독을 껴안고 살 수밖에 없는 것, 이를 두고 운명이라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운명론적 세계 인식은 다소의 위태로움을 지니고 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너무나 무차별적이다. 그에게 있어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 곧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힌 바람벽이 있어] 후반부)들은 본원적으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적 존재들이다. 또 그의 시에 나타나는 여러 여인상은 말할 것도 없고, 프랑시쓰 쟘,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심지어는 두보나 이백("내 쓸쓸한 마음엔 작고 이 나라의 녯시인들이 그들의 쓸쓸한 마음들이 생각난다. 내 쓸쓸한 마음은 아마 杜甫나 李白같은 사람들의 마음인지도 모를 것이다" -[杜甫나 李白같이] 중에서)도 운명적으로 고독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이상에서 두 가지를 강조하고자 했는데, 하나는 운명론이라는 형이상학의 획득과 그 극복 양상으로서 고독에의 의지가 그것이다. 특히 그것을 그의 시에 나타나는 여러 여인상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이려 했다. 이 쯤에서 다시 앞 절에서 검토한 '어머니'의 이미지가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 지를 살피는 일은 의미있고 흥미로운 일로 생각된다. 만일 같은 어머니의 이미지가 반복되고 있다면, 이상의 검토 결과는 시간적 계기에 따른 변모라기보다는 시적 대상에 따른 차이로 인한 것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사정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 시기 시에 있어 '어머니'는 현저히 그 원초적 충족성을 상실한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때의 '어머니'는 더 이상 자아를 원초적 충족성으로 감싸주지 못하는 것인데, 그에게 있어 이제 '어머니'는 "가난한 늙은 어머니"("그런데 어인 일인가/ 이 힌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씿고이다"-[힌 바람벽이 있어] 중에서)일 따름이다. 진정 가난하고 늙은 '어머니'의 초라한 이미지는 더 이상 자아의 생기의 원천이 될 수 없는 것이 아니던가! 성인이 된 외로운 자아가 발견한 초라한 고향의 풍경처럼….
다만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이 시기 시에, 초기 시에서는 크게 의미를 갖지 못했던, '아버지'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점은 의미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이 시기 시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아버지와 관련된 것이 많다. 예컨대, [고향]에서 '아버지'는 병고에 시달리는 자아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주된 계기가 되고 있고, [국수]에서는 마을의 풍습을 상기하면서 '아배'와 '큰 아바지'를 떠올리고 있다. 성숙한 자아가 느끼는 본원적인 고독을 그 나름대로 완화시켜 줄 수 있었던 것은 '부성'이 아니었는가 하는 추측을 해 보게 된다.
자연과 풍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변화가 엿보인다. 초기시에 보이는 자연과 풍물은 그 자체로서 충족함과 안온함 그리고 순수성(소박함)을 유지했고 자아를 행복하게 안아 주었던 것인데, 이제 그러한 원형으로서 생기를 잃은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예컨대, "定州 東林 九千여里 긴긴 하로길에/산에 오면 산 소리 벌에 오면 벌소리/적막강산에 나는 있노라"([적막강산] 중에서)에서처럼 자연은 적막강산일 뿐인데, '적막함'이 고요함과 쓸쓸함의 표현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초기의 자연과는 사뭇 다름을 생각하게 된다. 그의 풍물시로 흔히 언급되는 [국수]에도 이러한 변모가 확인된다. 전반부의 풍경만을 주목하여 [여우난곬족]등에서 확인되는 풍요로움을 읽어내기 쉽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자아는 그곳으로부터 이탈되어 있다. 그 작품의 곳곳에서 "이 그지없이 枯談하고 素朴한 것은 무엇인가"라고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될 것이다. 전체적으로 그것이 풍요롭고 소박한 풍물을 노래한 것은 사실이로되, 거기에서 간취되는 섬세한 변모의 징후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생각된다.
4. 맺음말
이상에서 {사슴}의 세계와 그 이후 한국전쟁이전까지의 시세계를, 거기에 나타난 여인상에 주목하여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백석 시의 내적 중심으로 운명과 고독의 정념이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 이후에도 백석은 북에서 60년대 초반까지 적지 않은 작품과 평론을 발표한다. 이 시기 작품에서도 중요한 테마는 여인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예컨대, [갓나물]({조선문학} 1959.6)은 동해바다에 명태잡이를 가서 일을 잘해 '민청상'을 받고 돌아온 처녀를, [동식당]({조선문학} 1959.6)은 명절날 '당과 조국'의 은혜를 입어 명절을 지내는 아낙네들을, [축복]({조선문학} 1959.6)은 어린 것의 첫생일을 지내는 고아로 자란 안주인을, [전별]({조선문학} 1960.3)은 보천 땅으로 출전하는 농촌의 처녀들을, 당원으로서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박순옥이라는 여인을 다룬 것이다.
이들 여인상의 공통적 속성은 순박한 농촌의 여인이거나 운명적인 삶을 살아가는 여인이었는데, 이제는 의식적 각성을 이룬 곧 당과 조국이 부여한 임무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능동적 여성으로의 변모하고 있음에 있다. 이와 아울러서 이 시기에 그는 동화문학에 많은 관심을 갖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동화시집 {집게네 네형제}(1957)와 평론 [동화문학의 발전을 위하여)({조선문학} 1956.5), [큰 문제 작은 고찰-아동시와 관련하여, 아동문학의 새 분야와 관련하여-]({조선문학} 1957.6) 등을 발표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면밀한 고찰이 필요할 것이다. 추후의 과제로 남겨 두고자 한다.
<서지 사항>/제목 : 여인과 운명과 고독과 : 백석론/발표지 : {선청어문}(제24집)/발표일:1996년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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