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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백석전집』,김재용 엮음, 실천문학사 펴냄
하늘에서 빛날 겨레시의 보석상자
박태일
백석은 1912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났다. 1936년 200부 한정본으로 낸 첫시집 <사슴>이 살아 묶은 시집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석의 시는 나라잃은 시기, 우리문학이 이룬 빼어나고도 소중한 보석상자다. 그의 시는 왜로(倭虜) 제국주의자들이 망가뜨린 토착 민속 현실과 전통 정서를 옹골차게 끌어 안으며, 그것을 부풀림없이 속속들이 되살려 내는 일에 아낌없이 바쳐졌다.
그의 시 곳곳에서 반짝이는 기물 상상력이나, 다양하고도 흥겨운 민속 체험, 게다가 친족과 겨레 공동체의 아픈 현실에 대한 한결같은 공감과 장소사랑, 식민자들의 지배언어와 맞선 고향 평북의 생생한 토박이말뿐 아니라, 그것을 두루 끌어 안은 생명 존중과 합일의 정신 속에서 그 점이 잘 드러난다. 제국주의의 노예 문화와 공간 지배에 맞선 대항문화로서 지닌 바 값지면서도 당당한 속뜻은 그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다.
백석은 광복 뒤 북한에 그냥 머물며 활동했다. 그나마 1962년부터는 북한문단에서 숙청된 듯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그 탓에 남북한 문학사 모두에서 그는 이제껏 알게 모르게 잊혀진 시인이 되어 있었다. 그에 대한 연구논문이 나오기 시작한 때는 1980년을 지난 몇 해 뒤부터였으며, 이동순이 처음으로 <백석시전집>을 묶어 세상에 널리 그의 시를 다시 알린 때는 지금부터 고작 십 년 앞섰을 뿐인 1987년이었다.
그 뒤 김학동이 엮은 <백석전집>과 시전집 <가즈랑집할머니>이 나왔고, 1950년대 발표했던 번역시까지 모아 송준이 <백석시전집>을 내놓은 해가 1995년이었다. 정효구가 엮은 <백석>이 그 뒤를 이었으며, 이동순은 1997년에 이르러 새로이 시전집 <여우난골족>을 묶어냈다. 이리 보면 세상에 그 모습을 다시 드러낸 지 십 년을 넘어서는 짧은 동안에 백석의 작품은 여섯 차례나 전집 꼴로 묶여지는 행운(?)을 얻은 셈이다. 폭발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해서 지나친 말이 아니겠다.게다가 여러 종에 이르는 선집까지 들면 그 수는 더한다. 올곧고 바른 창작 정신은 끝내 외롭지 않다는 사실을 그의 문학은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백석 시는 벌써부터 뒷날의 시인들에게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주기에 이르렀다. 어느덧 그의 시에 대한 영향사가 따로 씌어지고 있는 사실이 그 점을 잘 말해 준다. 반갑고 기쁜 일이다.
이제 젊은 비평가 김재용이 그동안에 나왔던 백석전집에서 훌쩍 더 나아간 <백석전집>을 새로이 엮었다. 나라잃은 시기에 씌어진 시 95편, 수필 3편, 소설 3편에다, 광복 뒤 발표한 동화시 12편, 시 13편, 평문 4편, 그리고 정론 3편을 이번 전집은 싣고 있다. 새로이 여러 작품을 힘들여 찾아내고 간추려, 이제까지 나온 전집 가운데서 가장 많은 작품이 실렸다. 이 일만으로도 엮은이는 우리문학사에 큰 공을 이루었다.
그 가운데서도 각별히 1957년 북한에서 낸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와 동화평론을 처음으로 찾아 되살려 낸 점이 돋보인다. 백석은 광복 뒤 북한에 남아 있으면서, 한동안 조만식선생의 비서로 일하기도 한 사람이다. 그 뒤 북한의 정치 변혁 속에서 어렵사리 살길을 찾아 나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백석이 새로이 찾아들어 섰던 아동문학의 세계는 북쪽에서 마냥 곤고했을 그의 삶자리를 일깨워 주는 좋은 고리가 되는 까닭이다.
목숨의 있고 없음, 슬픔과 위안을 하나로 태워 주는 넉넉한 <모닥불>에서부터, 혈연적 친밀감으로 환하게 살아 오르는 <여우난골족>, 배달겨레의 끊일 수 없는 기골을 그려 준 <북방에서>, 노예 현실에 대한 아픈 공감이 잘 옹근 <팔원>, 게다가 절망에도 품격이 있음을 아름답게 보여 주는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의 목소리를 따라 가면서 백석전집을 펼치다 보면, 어느 작품에서나 그의 시가 주는 감동은 새롭다.
읽는 이들은 그의 작품을 따라 읽으며 백석의 고향 평북 정주 벌판 - 백석이 좋아 했던 선배시인이었던 소월의 고향 곽산과 이웃한 곳이다 - 을 꿈꾸어 볼 일이다. 진달래꽃이 아름답게 핀 약산 동대는 먼 곳, 그 곳을 바라보며 백석이 사랑해 마지 않았던 여인과 지중지중 게처럼 거닐었을 원산 앞바다를 뒤 따라 걸어도 좋으리라. 백석이 끌어다 주는 밝은 시의 볓살이 읽는이의 마음을 따사롭고도 따사로이 비춰줄 것이다. 새로이 전집이 나온 일을 기회 삼아 백석 시 연구뿐 아니라, 백석 시가 일반인 속에서 더 널리 사랑 받게 되기를 바란다. 읽는이들은 백석이 지녔던 섬세한 생명에 대한 사랑과 심지 굳은 합일의 정신을 따라 가면서 독특하면서 흔하지 않은 감동에 젖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찾아내지 못한 백석 시에 대한 관심이 더욱 꼼꼼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연구가들의 잇다른 분발 또한 이 책이 재촉하는 바다.
백석, 그는 우리 겨레가 오래도록 사랑할 나머지를 한참 더 남겨 둔 시인이다. 그의 시는 나라잃은 시대 우리문학이 절망과 비탄 속에서 솟구쳐 올린 이채롭고도 환한 붙박이별이다. 하늘로 솟아 올라 환하게 빛나는 문학, 그런 문학을 우리는 고전이라 일컫는다. 백석의 시는 우리 겨레가 알게 모르게 잊고, 돌아보지 않았을 때에도 일찌감치 하늘 드높이 올라서 스스로 빛나는 별이었다.
(1997.12. 동보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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