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구(木具)

 

오대(五代)나 나린다는 크나큰 집 다 찌그러진 들지고 방 어득시근한 구석에서 살독과 말쿠지와 숫돌과 신뚝과 그리고 옛적과 또 열두 데석님과 친하니 살으면서

한 해에 몇 번 매연지난 먼 조상들의 최방등 제사에는 컴컴한 고방 구석을 나와서 대멀머리에 외얏맹건을 지르터 맨 늙은 제관의 손에 정갈히 몸을 씻고 교우 위에 모신 신주 앞에 환한 촛불 밑에 피나무 소담한 제상 위에 덕 보탕 식혜 산적 나물지짐 반봉 과일들을 공손하니 받들고 먼 후손들의 공경스러운 절과 잔을 굽어보고 또 애끊는 통곡과 축을 귀애하고 그리고 합문 뒤에는 흠향 오는 구신들과 호호히 접하는 것

구신과 사람과 넋과 목숨과 있는 것과 없는 것과 한 줌 흙과 한점 살과 먼 옛조상과 먼 훗자손의 거륵한 아득한 슬픔을 담는 것

내 손자의 손자와 손자와 나와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으 할아버지와……수원 백씨(水源白氏) 정주 백촌(定州白村)의 힘세고 꿋꿋하나 어질고 정 많은 호랑이 같은 곰 같은 소 같은 피의 비 같은 밤 같은 달 같은 슬픔을 담는 것 아 슬픔을 담는 것

 

들지고방 : 들문만 나 있는 고방. 즉 가을걷이나 세간 따위를 넣어 두는 광.
어득시근한 : 채광이 잘 안 되어 어두컴컴한.
말쿠지 : 벽에 옷 같은 것을 걸기 위해 박아놓은 큰 나무못.
신뚝 : 방이나 마루 앞에 신발을 올리도록 놓아둔 돌.
열두 데석님 : 열두 제석(帝釋). 무당이 섬기는 가신제(家神祭) 의 여러 신들.
매연지난 : 매년 지내온.
최방등 제사 : 평북 정주 지방의 토속적인 제사 풍속으로 차손(次孫)이 맡아서 모시게 되는 5대 째부터의 제사.
대멀머리 : 아무 것도 쓰지 않은 맨 머리.
외얏맹건 : 오얏망건. 망건을 잘 눌러쓴 품이 오얏꽃같이 단정하게 보인다는 데서 온 말.
지르터 맨 : 망건 등을 쓸 때 두통수 쪽을 세게 눌러서 망건 편자를 졸라맨
반봉 : 커다랗고 좋은 생선을 골라 제사상에 올려 놓은 것.
귀애하고 : 내리고, 읽어 내리고.
합문(闔門) : 제사 때에 귀신이 제사밥을 먹을 때 문을 닫거나 병풍으로 가리어 두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