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미ㆍ나귀


   동해(東海) 가까운 거리로 와서 나는 가재미와 가장 친하다. 광어, 문어, 고등어, 평메, 횃대…… 생선이 많지만 모두 한두 끼에 나를 물리게 하고 만다. 그저 한없이 착하고 정다운 가재미만이 흰밥과 빨간 고추장과 함께 가난하고 쓸쓸한 내 상에 한 끼도 빠지지 않고 오른다. 아는 이 가재미를 처음 십 전(十錢) 하나에 뼘가웃씩 되는 것 여섯 마리를 받아들고 왔다. 다음 부터는 할머니가 두 두름 마흔 개에 이십오전씩에 사오시는데 큰 가재미보다도 잔 것을 내가 좋아해서 모두 손길 만큼한 것들이다. 그동안 나는 한 달포 이 고을을 떠났다 와서 오랜만에 내 가재미를 찾아 생선장으로 갔더니 섭섭하게도 이 물선은 보이지 않았다. 음력 8월 초승이 되어서야 이 내 친한 것이 온다고 한다. 나는 어서 그때가 와서 우리들 흰밥과 고추장과 다 만나서 아침 저녁 기뻐하게 되기만 기다린다. 그때엔 또 이십오 전에 두어 두름씩 해서 나와 같이 이 물선을 좋아하는 H한테도 보내어야겠다.

묘지와 뇌옥(牢獄)과 교회당과의 사이에서 생명과 죄와 신(神)을 생각하기 좋은 운흥리(雲興里)를 떠나서 오백 년 오래된 이 고을에서도 다 못한 곳, 옛날이 헐리지 않은 중리(中里)로 왔다. 예서는 물보다 구름이 더 많이 흐르는 성천강(城川江)이 가깝고 또 백모관봉(白帽冠峰)의 시허연 눈도 바라보인다. 이곳의 좌우로 긴 회(灰)담들이 맞물고 늘어선 좁은 골목이 나는 좋다. 이 골목의 공기는 하이야니 밤꽃의 내음새가 난다. 이 골목을 나는 나귀를 타고 일없이 왔다갔다 하고 싶다. 또 여기서 한 오 리 되는 학교까지 나귀를 타고 다니고 싶다. 나귀를 한 마리 사기로 했다. 그래 소장 마장을 가보나 나귀는 나지 않는다. 촌에서 다니는 아이들이 있어서 수소문해도 나귀를 팔겠다는 데는 없다. 얼마 전엔 어느 아이가 재래종의 조선말 한 필을 사면 어떠냐고 한다. 값을 물었더니 한 오 원 주면 된다고 한다. 이 좀말로 할까고 머리를 기울여도 보았으나 그래도 나는 그 처량한 당나귀가 좋아서 좀더 이놈을 구해보고 있다.

(조선일보, 1936년 9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