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뻗치듯 만세교


    함마 천 평 넓은 벌이 툭 터진 곳에 동해 좋은 바다가 곁들이고 신흥, 장진 선선한 바람이 넘나들고…… 함흥은 서늘업게 태어난 고장이다. 아카시아, 백양목의 그늘이 좋고 드높은 하늘에 구름이 깨끗하고 샘물이 차고 달고……. 함흥은 분명히 서늘업게 태어난 고장이다. 이 서늘어운 도시에 성천강 좋은 물이 흘러 더욱 좋다. 강은 한번 마음대로 넓어보아서 북관놈의 마음씨 같이 시원한데 산빗물 불은 이 강에 백운산 하이얀 뭉게구름이 날리고 정화릉 백구새 날리고 신흥 골동바람이 날리는 때 함흥사람도 같이 뛰어들어 천상의 서늘어움을 얻으며 자랑웃음을 웃는다. 강은 해정한 사주(沙柱)를 어루만지며 날아가고 푸르른 동둑은 강을 따라 한없이 뻗는데 동둑을 걸으면 걷는 몸이 온통 푸르르고 눈을 들어 쳐다보면 관모, 백운에 흰 눈이 하여 몸 속에 찬기가 오싹하는 것은 함흥사람이다. 강이 넓으니 다리가 길어 만세교인데 난간에 기대이면 함흥벌 변두리가 감감쇠리하여 태고같이 아득하고 장진산골 날여멕이 바람이 강물을 스쳐와 회이한 선미(仙味)가 구름 위에 떴구나 하고 생각게 하는데 낮보다도 낮이 기울고 개밥바래기 별이 떠서부터 모작별이 넘어가는 밤 동안 그 위를 지중지중 거니는 것은 함흥사람이 서울사람의 경복궁과 바꾸지 않을 것인 것이다.
  그러나 함흥은 강과 다리에 그 냉미(冷味)를 다하지 않는다. 진산 반룡산의 조망과 바람에서 얻는 냉미! Y여학교의 뒤로 서양인 선교사들의 집을 지나 공자묘의 뒷담벽을 대어 산마루로 올라타면 벌써 날아갈 듯한 바람이 휙휙 마주내받고 눈을 들면 신흥 장진의 컴컴하니 그늘진 체모가 함주 연산의 수장한 모습이며 동해의 말숙하고 새틋한 양자(樣姿)가 모두 오장육부의 더위를 몰아내이는데 이제 이 산마루 어데ㅏ루 낙엽송이나 적송 그늘 좋은 밑에 함흥 소주잔을 기울이는 냉미는 반천 년 고도의 심장이 아니면 알지 못할 것이다.
   함흥의 서늘어움은 그래도 동해를 두고는 없다. 서함흥역에서 한 20분 가면 구룡리 해수욕장이다. 동해의 맑은 물에도 맑은 물인데 10리에 넘는 기나긴 모래사장이 테를 쭉 두르고 앞에는 눈길을 가로막는 것이 없이 쪽빛 같은 바다가 뱅글뱅글 돌아간다. 물결이 좀 높으나 높은 대로 또 시원한 맛이 있고 그리 멀리 엿지 못하나 그런대로 또 물은 정해서 좋다. 발뒤꿈치로 물밑을 쑤시면 대합조개 명주조개 고초조개 같은 것이 집히우고 세모래가 부드러워서 모래찜이 간지럽게 좋고 어쩐지 엑조틱한 정서가 해조 내음새 같이 떠도는 이 해빈(海濱)에서 까닭없이 알착하니 가슴을 앓는 것은 나뿐이 아닐 터이지만 지난 여름 어느 날 백계로인의 어여쁜 처녀들을 이 해변에서 만난 뒤로 나는 이 구룡을 생각하는 마음이 아주 간절해졌다.
   흥남, 천기리의 조질계(朝窒系) 공장들이 가까운 곳인데도 구룡은 바다에 기름이 뜨지 않고 더러운 쇠배가 뜨지 아니 하고 해서 그보다 좋은 서호진이 예서 멀지 않으나 서호는 제대로 행세하는 탓에 함흥사람들은 가까운 이 구룡을 내 것같이 여기고 다니는 것이다. 남량이면 다시 더 없을 것이나 또 남량의 풍률르 함흥이 모른대서는 아니다. 만세교를 건너는 낚시질꾼들의 멋들어진 체모를 보고는 얼만하지 않은 풍류가 서상리의 늪에 개울에 그 늪에 그 개울에 드리운 낚싯대에 그 낚싯대에 달려나오는 은빛 비늘에 얻는 것을 알 것이다. 벼 푸른 논 가운데 작은 삿갓의 그늘을 신세지고 서서 낚는 손바닥 같은 눕고기 붕어 수양버들 늘어진 아래 자리 깔고 앉아 낚는 개울고기 천에, 버들지, 이렇게 해서 천렵이 벌어지는 서늘어움을 10리계에 두고 사는 함흥사람들은 함흥이란데 만큼 살기 좋은 고장이 없다고 좀 야무지마마 투박한 사투리로 말하는 줄 아십니까.

(조선일보, 1937년 8월 1일)